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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의 바깥에서 사유하고, 창조하라.
김성우, 독립 큐레이터 / 프라이머리 프랙티스 디렉터

귀 있는 자는 들으라. 이 구절은 신약성경 전반에 걸쳐 여러 번 나오는 문구이며, 신약성경의 마지막 책이자 유일한 예언서인 계시록에도 등장하는 구절이다. 여기에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경청과 순종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동시에, 믿음의 근본적인 요소 중 하나를 지적한다. 즉, ‘귀가 있는 자’는 물리적으로 듣는 능력을 갖춘 사람이 아니다. 이는 메시지를 받아들일 준비, 즉 메시지를 이해할 수 있는 능력과 의지를 가진 사람을 의미한다. 믿음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이 구절은 동시에 수용자가 진리를 인식하고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는지에 대한 질문이기도 하다.

한동안 이동혁은 믿음의 근거지가 되어온 실제 장소에 주목해 왔다. 그는 전국 각지의 폐허가 된 교회에 머물며, 믿음으로서 구축된 공동체가 와해한 후 남은 황량함을 경험한다. 인간의 존재 조건, 우주, 죽음에 대한 궁극적인 질문들에 직면하며, 이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내세운 초월적 실재는 허물어진 풍경과 함께 나약하고 위태로운 삶의 양식만을 비출 뿐이었다. 폐허가 되어버린 현재의 장소는 모든 믿음이 내세운 이상향이 실패했을때 그 시간이 무너지는 신호로부터 시작한다. 이곳에는 그저 앞서 지나간 세속적 활동들이 남긴 연약한 껍데기만이 존재할 뿐이며, 그렇게 보인 폐허의 양식은 정상적(이라고 믿었던) 시공간의 질서로부터 박리된 이질적이고 불안정한 것이다. 이것은 다가설 수 없는 세계가 내어준 공허한 빈자리이며, 약속되지 않은 미래가 현실에 당도해 남긴 증거일 뿐이다. 그렇게 절대적 존재에 대한 믿음과 그것이 내세운 진리의 체계는 결국 삶의 조건 속에 아스러진 공간의 형식으로 남겨졌다. 작가에게 이러한 폐허의 형식은 아주 특별한 인상을 지닌 대체 불가능한 장소인 동시에 그 무엇으로도 확장할 수 있는 특이한 시공으로 보였을지도 모른다. 그것은 초월자에 대한 믿음을 내려놓고 현실적 삶의 조건과 겹쳐 놓을 때 비로소 온전하게 확인되는 풍경이었을 테니 말이다. 절대적 믿음은 어디에 존재했으며, 그 많은 추종자는 어디로 향했는가. 그렇게 믿음은 붕괴되었고, 현실에는 폐허라는 이름의 빈 껍질만이 남았다.

과거 장소의 경험을 배경에 두었던 이동혁의 작업은 본 전시에서 요한계시록의 일부 문장을 바탕으로 작동한다. 기독교 종말론의 핵심 텍스트 중 하나인 이것은 예언과 상징, 비유를 통해 최후의 심판, 새 하늘과 새 땅의 창조 등 인류의 종말, 그리고 이후의 세계를 묘사하고 있다. 작가는 글에 묘사된 장면에 주목하고 이를 입체적으로 해석한다. 이러한 방식은 일견 지난 개인전 <<A Nuance Remained on the Window>> (2022, 에이라운지, 서울)의 시도를 떠올리게 한다. 이를테면, 당시 작가는 두 인물의 엉켜 있는 모습을 바라보는 방향에 따라 다르게 포착함으로 때로는 한 몸으로, 때로는 두 존재의 격렬한 물리적 대립처럼 보이게 화면을 구성해 내는 방법론을 구사했다. 이러한 실험은 대상을 부분이 아닌 덩어리로, 인체에서 비롯된 도상을 전혀 다른 형상으로 연장케 함으로 구상과 추상 사이를 오가는 이미지의 확장 가능성을 논하고, 논리를 넘어선 서사를 획득하게 하였다. 본 전시에서는 기존의 방식에서 한 발짝 더 나아가 도상의 의미를 화면의 안팎에서 해체함으로 모종의 서사가 틈입할 여지를 다층적으로 확보한다. 하나의 도상은 지난 작업에서 그러했듯 방향에 따라 상이하게 담기는 것과 함께 타 화면으로도 전이, 연쇄한다. 다중 시점으로 도상을 중심에 놓고 포착하던 시선은 대상의 중심에서 때로는 부분으로 옮겨가며 앵글을 달리하고, 전체 형상을 해체하는 동시에 화면의 구성에 복무하는 부분, 또는 배경으로 격하시킨다. 특히 이러한 도상이 성경의 상징성에 기원하는바, 기존 상징성의 구조로부터 이탈한 이미지는 의미의 낙차가 큰 만큼 더 광대하게 또 다른 의미의 여백을 확보한다. 예를 들면, 전쟁과 기근, 죽음 등을 상징하며, 하나님의 심판과 인류 역사의 종말을 예고하거나, 순결과 승리, 정의를 나타내며 최종적인 승리와 구원의 메시지를 전달하던 말의 도상은 다른 사물이나 동물의 형상과 뒤엉키고 어두운 배경의 심연으로 고개를 숨기며, 심지어 다른 화면에서는 그 동세만을 일부 다시 드러내는 식으로 출현한다. 이 과정에서 공동이 합의해 온 상징적 가치는 무의미해지고, 의미가 모호한 허물로만 남겨진다. 그것은 기존의 기호로서 지시하던 상징적 의미의 여지는 남긴 채 어디로든 연결될 수 있는 형상인 동시에 그저 그 형상을 이루는 회화적 물질이 남겨진 자리 정도에 그칠 수도 있다. 마치 창백한 배경의 화면 위를 유령처럼 맴도는 이것들은 폐허가 주던 인상과 크게 다르지 않다. 상징이 해체된 도상은 인간을 초월한 존재로 대리했던 믿음이 소거된 후 남은 현실의 조건일 뿐이다. 특별한 정서로 충동하지만, 그 무엇이든 가능한 공간으로서의 이미지.

 

한편 작가가 이미지를 운용하는 방식은 화면 안에 머무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 밖을 향함으로 확장된 서사적 가능성을 지닌다. 그가 동원하는 도상이 애초에 종교적 상징에서 추출한 것이기에 이미 서사성을 내재함에도 불구하고, 또 다른 화면에서 각도와 구성을 변주하며 거듭 등장하는 방식은 마치 영화적 시퀀스와 같은 흐름을 만들어낸다. 프레임이라는 외부의 체계가 내부의 이미지에 의미를 속박하려 한다면, 화폭을 넘어서 연속하는 이미지는 캔버스 안이 아닌, 바깥으로 시선을 연장한다. 심지어 분할된 화면들 속 같은 몸에서 시작되어 분절되거나 다른 각도로 선 부분들은 회화의 프레임을 오히려 강하게 인식시킴으로 화폭과 화폭 사이 빈 공간에까지 시선을 가닿게 한다. 이는 서사의 완성보다는 시퀀스 사이 미끄러짐을 발생시키며 도상에 내재한 복수의 서사성을 강화한다. 이렇듯 전시에서 연쇄적 사고는 도상, 화면, 그리고 더 나아가 공간적 접근으로까지 확장한다. (비)선형적 서사를 의도적으로 절단하고 새롭게 갱신하려는 작가의 의도는 서사의 문맥보다는 서사가 지닌 풍성함 그 자체로 우리를 안내한다. 대상을 둘러싸고 고정되지 않은 채 단절되어 제한된 시점은 지난 이야기의 교훈적서사와는 거리가 멀다. 구체적인 도상과 명시적이지 못한 풍경, 서사의 중간이 잘려 문맥으로부터 이탈한 듯한 상황은 거듭하는 탈주 속에서 끊임없이 새로운 서사를 추동한다. 텍스트는 이미지와의 관계 속에서 믿음을 강화하는 시각성을 획득한다. 하지만 이동혁의 이미지는 활자의 보완으로 그 역할을 하지 않으며, 의도적으로 서사를 운반하지도 않고, 마냥 흩어지고, 다시금 출현하길 거듭하며 텍스트가 남긴 잔상에 신앙 넘어 또 다른 믿음을 욕망한다. 이러한 시도는 번역의 차원에서 이해될 수 있다. 새로운 맥락에서 재해석하는 과정은 원작에 없던 새로운 의미를 발견하게 하니 말이다. 작가는 벤야민이 그랬던 것처럼 원작 속에 잠재해 있는, 그러나 아직 가시화되지 않은 번역 가능성을 인정한다. 하지만, 그 가능성을 원

작 자체에만 기거하도록 두지는 않는다. 그는 번역에 수반되는 이동과 변형을 통해 기존의 지식-권력 체계를 적극적으로 교란하고, 공동체가 믿어온 기존 가치의 해체를 통해 새로운 가치를 찾기를 요구한다. 그러므로 그의 작업에서 믿음의 체계는 도상의 번역과 전이, 이식의 과정에서 붕괴한다. 번역의 과정에서 발생하는 오독, 재독의 여지는 그 자체로 빈틈없던 체계에 새로운 해석을 위한 구멍을 만든다. 믿음은 물리적인 조건 위에 전승된다. 그것은 언어를 통해 전파되었고, 장소의 형식 안에서 믿음으로 결속되었으며, 각인된 활자로 시간을 초월하였고, 절대 흩어지지 않을 이미지로 신성함을 갱신, 강화하였다. 잘려 나간 도상과 달리하는 시점, 화면을 건너뛰는 이미지 사이에서 연장되는 서사들. 도상은 이제 숭고한 믿음과 초월적 실재를 위해 존재하지 않는다. 흩어지고 분열된 이미지는 잠재적 서사를 위해 느슨한 링크를 만들 뿐이다. 귀 있는 자는 들으라. 이제는 듣기만 하는 수동적인 존재가 아니라 스스로 발화해야 하는 주체가 될 때이다. 이동혁이 펼쳐놓은 눈앞의 풍경들을 마주하며, 스스로 선택하고, 헤아리며, 존재했던 믿음의 체계 밖으로부터 이들을 이해해야만 한다. 이제 여기에 막연히 듣고, 받아들이기만 할 이들이 있는가. 보고, 사유하고, 창조해야 할 때이다.

Ponder and create outside of faith

(Kim Sung woo, Independent Curator / Director of Primary Practice)

 

He who has ears, let him hear. This passage appears several times throughout the New Testament as well as in the Book of Revelation, the last and only book of prophet from the New Testament. It not only emphasizes the importance of listening and obedience to the Word of God but also points to one of the fundamental elements of faith. In other words, “He who has ears” is not someone with the physical ability to hear. Rather, it is those who are ready to receive the message, that is, have the ability and willingness to understand the message. This passage, which underscores the importance of faith, is also a matter of whether the recipient is ready to recognize and accept the truth.

For some time, Lee Dong Hyuk has paid attention to physical spaces that have been the base of faith. Staying in ruined churches across the country, he finds the desolation that remains after the community built on  faith disintegrates. The transcendental reality built to confront the fundamental questions around the conditions of human existence, the universe, and death now only reflects a weary and precarious way of living along with a ruined landscape. The space, now in shambles, begins with the signal of the collapse of the utopia that all beliefs promised. Here, only the empty shell left behind by past worldly activities exists, and the form of the ruins is actually rendered foreign and unstable, separated from the normal (or believed to be normal) order of time and space. It is an empty space left by an unapproachable world, nothing more than an evidence deserted by an unpromised future that reached reality. In the end, the faith in an absolute being and the system of truth that it stood above left its traces in the spaces that were broken up in the conditions of life. To the artist, the form of these ruins may have seemed like an irreplaceable place that made a very special impression and, at the same time, a unique construction that could indefinitely expand. It would have been a landscape that could only be fully seen when one sets aside belief in the transcendent and transposes it with the realistic conditions of life. Where was absolute faith, and where did its many followers go? Faith collapsed, and only an empty armor of its ruin remained in reality.

In this exhibition, Lee's works that dealt with the past experience of places now exist in relation to a few passages from the Book of Revelation. As one of the core texts of Christian eschatology, it describes the end of humanity and the world afterward, including the final judgment and the creation of a new heaven and earth through prophecy, symbols, and parables. The artist pays special attention to the scenes described in the text and interprets them from various dimensions. At first glance, this method reminds us of his previous solo exhibition, A Nuance Remained on the Window (2022, A-Lounge, Seoul). For example, the artist captured the entangled two figures that can be seen differently depending on the viewer’s perspective, sometimes as one body and sometimes as two beings in an intense physical altercation. These experiments explored the possibility of expanding images that oscillate between figuration and abstraction by turning the object into a mass rather than a part and extending the icon derived from the human body into a completely different shape. In this way, he creates a narrative that goes beyond logic.

 

This exhibition goes a step further from the existing method and deconstructs the meaning of the icon both on and off the canvas, thereby securing room for a narrative to enter through multiple layers. As in his previous works, one icon is seen differently depending on the direction, but it now also transfers and expands into other works. The gaze that focuses on the icon from multiple viewpoints sometimes moves from the center of the object to its peripherals, changing its angle, dismantling the entire form and, at the same time, relegating it to one part of the canvas’ composition or to the background. Especially since these icons originate from Biblical references, images that deviate from the existing structure of symbolism allow greater space for alternative significance. For example, the icon of the horse, which symbolizes war, famine, and death, and foretells God's judgment and the end of human history, or represents purity, victory, justice, and salvation, appears entangled with the other objects or animals or hides in the abyss of the dark background. Its movements are even only partially portrayed on another canvas. In this process, the collectively agreed symbolic value becomes meaningless and is left only in its traces with ambiguous significance. It is not only a form that can be relevant anywhere while leaving room for the symbolic value that the existing sign held but also a space where the pictorial materials that make up the form are forsaken. These elements that hover over the pale canvas like ghosts are not much different from the ruins’ impressions. Icons whose symbols have been dismantled are merely the conditions of reality that linger after the faith in beings that transcend human has faded. This is an image of a space that evokes a special

emotion; it is where anything is possible.

 

Meanwhile, the way the artist uses images does not stop within the canvas but expands their narrative possibilities beyond it. Although the icons he introduces are religious symbols and therefore already have their narrative quality, the way they appear repeatedly in different canvases with varying angles and compositions creates a cinematic sequence. If the frame, an external system, tries to bind the significance to the internal image, the images that continue beyond the canvas extend the gaze outward, not into the canvas. Even in the divided spaces, the parts that originate from one source and are segmented or stand at different angles make the frame of the painting rather more impressionable, allowing the gaze to reach the empty spaces between the canvases. This structure creates a slippage between sequences rather than completing the narrative, reinforcing the multiple narrativity inherent in iconography. In this formulation, serial thinking in the exhibition extends to icons, canvas, and even spatial approaches. The artist’s decision to intentionally cut and renew the (non)linear narrative guides the viewers to the richness of the narrative itself rather than its context. The unfixed, disconnected and limited viewpoint surrounding the subject is far from the didactic narrative of the past. In this sense, concrete iconography, non-explicit landscapes, and situations that seem to be abruptly cut off from the context continuously drive new narratives through repeated escapes.

 

In its relationship with images, text acquires a visuality that strengthens faith. Lee’s image, however, neither serves as a complement to the written text nor does it intentionally convey the narrative. Rather, it simply scatters and reappears, desiring another faith beyond belief in the after-image left by the text. These attempts can be understood in the realms of translation. The process of reinterpretation in a new context allows us to discover new meanings that were not present in the original. The artist, like Walter Benjamin, acknowledges the potential for translation that is latent in the original work that has yet to be visualized. Still, that possibility is not limited to the original work itself. He actively disrupts the existing knowledge- power system through the movement and transformation that comes with translation and demands that new values be found through dismantling existing communal values. Therefore, in his work, the system of belief collapses in the translation, transfer, and transplantation of icons. Misreadings and re-readings that occur during the translation process themselves create holes for new interpretations in an otherwise tight system.

 

Faith transmits on physical conditions. It spreads through language, solidifies in the form of a space, transcends time through engraved writing, and renews and strengthens its sacredness through images that would never dissipate. Narratives that extend between cut-out icons, different perspectives, and images that skip across the canvases. Icons no longer exist for sublime beliefs and transcendental beings. Scattered and fragmented images only create loose links for a potential narrative. He who has ears, let him hear. Now is the time to become those who speak on their own, rather than the passive ones who only listen. Facing the landscapes laid out before our eyes by Lee, we must make our own choices, contemplate on them, and comprehend them from outside the existing belief system. Now, who are those who will only listen and mindlessly accept? It is time to see, ponder, and create.

LEE DONG HYU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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